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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이야기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렸을 때 기억
댓글 45
조회수 1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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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졌더라도, 마음 저 깊숙히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답니다.

🥕@아휴* 님 사연

제 아버지는 사우디 가서 일하던 건설노동자였죠 이만큼 시간이 없는 아빠가 있을까요 ㅎㅎ 그 와중에도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잠깐 한국 들온시기에 폭설와서 저도 학교를 못가던날 집 마당에서 이글루를 만들며 놀던 추억입니다. 이 하나가 성인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가슴 한켠에 따뜻한 불씨로 남아있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이에게도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라 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주고요 ㅎㅎ 아이는 그 추억 하나로 삶이 힘들때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오늘도 힘내봅니다. 아빠들 화이팅이요 

🥕@봉봉도도** 님 사연 

힘든 고3 시절, 엄마가 싸주었던 도시락이 기억이 나요. 우리 딸 힘내라고 맛있는 반찬을 듬뿍듬뿍 늘 정성스럽게 싸주셨어요.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는데 제 도시락에만큼은 돈을 안 아끼셨던 거 같아요. 아이들하고 양념 돼지고기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저도 모르게 뿌듯하고 힘이 솟았던 기억이 있네요. 비록 어머니는 사랑을 딸에게 잘 표현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도시락에서만큼은 그 사랑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커서도 양념된 돼지고기를 먹을 때 엄마의 그 도시락이 생각나곤 합니다.

🙆‍♂️🙋‍♀️ 아직도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우리 엄마 아빠의 기억이 있나요?

우리 아이는 나와의 시간을 독립한 후 어떻게 떠 올릴까요?

👶 나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있답니다. 그 어린아이가 또다시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지요.

내 마음속 어린아이도 소중히 잘 보살피며, 실제 우리 아이를 잘 키우도록 해요.

꼭 참고해 주세요
차이의 놀이의 모든 콘텐츠는 아이를 돌보고 기르는 모든 양육자 분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 입니다. 아이를 기르는 주 양육자는 아빠, 엄마, 조부모님, 돌봄 선생님 등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매 콘텐츠마다 각 양육 상황을 고려하여 모두 기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엄마'로 표기하여 설명드리는 점이 있습니다. 차이의 놀이의 콘텐츠는 엄마가 주로 양육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써 엄마를 주로 언급하여 표기하는 것은 아닌 점 꼭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니오니찐일 년 이상 전
처음 댓글 남겨보는데요. 먼저 저는 곧 서른을 앞두고 있고 17개월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부모님의 이혼으로 편모가정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학교 운동회나 학예회, 졸업식 등 학교행사에는 늘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여해주셨죠. 그럴때마다 아빠있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커오면서 제 마음속에는 가정을 포기하고 돌아선 아버지가 참으로 밉기도 하고 이해도 안갔습니다. 그럼에도 아빠의 따뜻한 모습이 아직도 한켠의 기억에 남는데 바로 7살 크리스마스날, 눈을 떠보니 술냄새를 풍기며 아버지가 옆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제가 꼭 갖고싶다던 캐릭터 다이어리가 머리 맡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당시 두 분께서 한창 부부싸움을 일삼고 격한 감정을 비치던 모습들을 보던 때라 저도 많이 위축되고 걱정하던 때였는데 그럼에도 자식을 생각하며 사와주신 다이어리가 어찌나 고맙고 눈물나던지요. 한참 어린 때인데도 왜인지 눈물이 났었답니다^^ 힘들었음에도 자식을 생각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제는 부모가 되고나니 생각되면서 지금 딸아이를 키우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적어내렸는데 모쪼록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yangyang21일 년 이상 전
저도 처음 대댓글 남기는데요 글 읽으면서 눈물 또르륵이었네요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이나구요 힘들었지만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저도 곧 17개월되는 딸아이 키우는데 우리 같이 힘내서 사랑가득주며 키워보아요 화이팅!

밍꼬오일 년 이상 전
저는 세살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넉넉치 못한 살림에 외조부모님께서 저를 맡아주셔서 초등학교를 보내주셧습니다 그때 그집은 산밑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더운여름 학교가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할아버지가 냉장고에 넣어두신 시원한 황도를 찬물로 세수하고 먹엇던 그 순간이 잊을수 없는 제가 사랑받앗던 기억이에요 아이를 낳고 우울하고 힘들었을때 그기억이 절 버티게 해주었어요 드라마 같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9제 지나고 찾아온 저희 아이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선물이에요 !! 오늘 아이 500일인데 할아버지가 더 많이 생각나네요 ^^


래미미래일 년 이상 전
눈물이 나네요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맘님이 잘 자라신 거 같아요 앞으로도 할아버님이 지켜주실 거에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율엄마인디요일 년 이상 전
5살때 바다에 간적이 있었어요 겨울이였는데 제가 차안에서 잠이들어서 엄마가 절 등에업고 코트를 덮으셨는데 엄마등에 기대니 엄마냄새도 좋고 날은 추웠는데 전 업혀있어서 엄마 등도 따뜻하고, 해가 좋아서 코트안에서 포근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tyche일 년 이상 전
놀라워요 5살때가 생각이 나시는군요

바로바로일 년 이상 전
티비를보고있으면 아빠가 항상 발을 조물조물 마사지를 해주셨어요. 시원하기도했지만 귀찮았었는데 지금 제가 저희 아들한테 그러고있네요 사랑이었던거예요 무뚝뚝해서 표현을 잘 하진 못하셨으면서도 딸내미 종일 걷고뛰느라 수고했던 발을 마사지해주셨던아빠기억이 소중해요 저도 친정집가면 아빠 마사지 좀 해드려야겠어요

두바이처자일 년 이상 전
한참 IMF로 온 나라가 힘들었을 때, 아버지가 하시던 가게 일이 잘 안됐어요.. 그래서 어느날 엄마도 일을 하러 나가셔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옆 아파트, 학교 근처 공사하는데 나가신다고 .. 아빠도 같이. 일용직인거죠. 전 공사장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하고 떨어져서 사고나면 어쩌지 이런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졌는데, 그 찰나 어두운 마음이 표정이 스쳤나봐요. 엄마가 '친구들이 엄마 볼까봐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마스크 다 쓰고 큰 모자 쓰고 일할거야' 하시는데 그때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당시 아마 10살쯤??? 근데 아직도 그 당시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져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해서 집에는 한달에 한번 갔었어요. 기숙사 밥만 먹다보면 엄마 김밥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요.. 그런 이야기하면 그 주 주말에 아빠가 2시간 편도 거리를 운전해서 배달해주셨어요. 긴 말도 없으시고 도시락만 전달 하고 다시 집에 가셨는데.. 원래 과묵하신편 ㅋㅋ 힘든일 후 주말에 좀 쉬고 싶으실텐데 딸래미 먹이자고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김밥 싸고 또 먼길 운전 해오시고... 이 두가지 기억이 가장 크게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라랄라맘일 년 이상 전
전... 따뜻했던 기억이 없는것같아요.... 제 기억이 잘못된거면 좋겠어요... 여동생이 먼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문득문득 엄마처럼 행동하는 자기모습보고 깜짝 놀랄때가 있대요 저도 그럴까바 겁나요 사랑스런 우리아가한테는 못받은 사랑과 관심 많이주고 싶어요~


임화룡일 년 이상 전
그러게요...저도 익명으로라도 적을만한 그런 기억조차 없는데..근데 저희부부가 지금 우리아이에게 비슷한 경험을 물려주는거같아서 속상하네요

버터컵맘일 년 이상 전
다른 분들처럼 따뜻한 기억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따뜻하다면 따뜻한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하지만 여전히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던 나이였죠. 크리마스날 아침 눈을 떴고 동생과 제 머리맡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놓여있었습니다ㅎㅎ 열어보니 그 당시 저희남매가 푹 빠져 있었던 해리포터의 게임CD였습니다!! 어찌나 신나던지.. 그리고 한 켠에서 발견한 이마트 가격표와 바코드.....!!! 엄마아빠한테 여쭤봤지요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마트에서 사나봐!!" 엄마아빠는 멋쩍게 웃어넘기셨는데 어린 저의 마음 한켠에 산타클로스가 아닌 우리 엄마아빠가 준비한 선물이구나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죠 그 땐 나름 충격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항상 웃음나는 그런 추억입니다ㅎㅎ 부모가 된 지금은 엄마아빠가 속으로 얼마나 당황했을까도 생각이 드네요ㅋㅋㅋㅋㅋ


딴이엄마일 년 이상 전
이마트 바코드 아차 싶으셨겠네요 ㅋㅋㅋ저도 생각 나네요ㅋㅋㅋ 현관앞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간거 같다며 선물을 가지고 오신 엄마. 선물상자와 카드가 있었는데 카드에 써있는 글씨는 누가봐도 엄마만의 동글동글한 글씨체였어요 ㅋㅋㅋ 제가 엄마 글씨랑 똑같다고 하니 "아니야 여기 산타할아버지가.. 라고 쓰여있잖아." 발뺌하던 우리엄마 ㅋㅋ

리사리사리사일 년 이상 전
저두요~ 빨랫줄에 걸려있던 비닐봉지 안에 빅파이가 들어있었어요 ..~ 그때 엄마 아빠가 산타라는 걸 깨달았죠 ㅎㅎ

이쁜리야일 년 이상 전
초등학교 2학년때 어디갔던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밤늦게 귀가하는데 차에서 잠이 들었어요. 아빠가 저를 조심히 안아올리는데 살짝 깼지만 자는척했어요. 엘베도 없던시절 4층까지 가야했거든요? 지금 겨우 7살 마른 첫째도 무거워서 잠들면 어케든 깨우거나 둘째 안자면 둘째 유모차에 싣고 가요. 예전에 우리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


뽀싱싱일 년 이상 전
저도 자주 그랬는데 ㅋㅋ 그 기억들이 늘 남아있어요!

지금처럼만뚜뚜일 년 이상 전
초등5학년때 새로운곳으로 이사와 새보금자리에서 살다가 중학교올라갈때 집이 보증잘못서서 쫄딱 망했죠. 입학을 포기하고싶을정도로.. 교복도 못살정도였으니.. 겨우 입학했는데~~ 어느날 도시락 못싸간날 엄마가 먼저 점심시간직전에 맞추어 복도에 도시락 놓고가는걸보았어요. 도시락안에는 갓지은 따뜻한밥에 손편지까지.. 친구들이 더 감동받아 했던기억이 나네요. 초등학교시절에는 사는게 바빠 저를 많이 못챙겨주어서 중학교시절에는 비록 집안이 망했어도 친구처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손편지도 많이 써주시고, 후에는 컴퓨터도 배우셔서 컴퓨터 어딘가에 저에게 몰래 편지도 써놓으시고.. 주말에는 버스타고 가까운 산에라도 가자며 평상시 나누기 어려운 성교육. 남자친구이야기등 어려운일 있으면 꼭 엄마에게 말 해주었음 좋겠다고... 무거운 이야기를 참 센스있게재치있게 말하는 엄마의 센스는 과히 이십년이 지난지금도 놀라워요. 저역시 제 딸에게도 꼭 스스럼없이 편한 친구처럼 지혜롭게 그런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너무일찍 제곁을 떠난 엄마.. 저에게 많은것을 알려주고 가신것 같아요. 잊지않을게요.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유쥬애미일 년 이상 전
어느 추석 날 저녁 아빠와 오빠와 함께 백운대에 올랐어요. 거기서 커다란 보름달을 보고 내려와 야채곱창을 먹었는데 지금도 그 근방을 지날 때면 그때의 기억이 가슴 한 켠에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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